독서노트/2020-2 현대건축 흐름과 맥락

[독서노트] <현대건축 흐름과 맥락>#002 아르누보

architaek 2020. 3. 5. 00:23

<현대건축 흐름과 맥락>

아르누보

[0010-2~0011-1] 유럽 전체로 퍼져나간 식물형태
01. 역사주의가 새로운 시대를 표현할 뚜렷한 양식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연"으로 눈을 돌림. 특히 프랑스 화가들 화실을 벗어나 자연에 열중하는 와중에 새로운 회화 주제 및 표현방식 획득.
02. 나무의 구부러진 선, 꽃잎 등을 장식(ornamentation)상의 새로운 형태언어 및 2차원 상으로 환원. 이러한 새로운 형태가 새로운 재료인 유리, 철과 결합하여 건축에서도 새로운 형태언어 만들어짐.
03. 독일에선 이 새로운 양식을 예술잡지 <Die Jugent(젊음)>를 따라 유겐트슈틸(Jugentstil)이라 명명. 3명의 건축가, 리하르트 리머슈미트, 브루노 파울, 아우구스트 엔델이 새로운 예술 운동의 중심.
04. 1800년대 고전주의가 전통형태 규범의 변칙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과 대조적으로 아르누보는 지역적 변수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 프랑스의 아르누보(Art Nouveau), 독일의 유겐트슈틸, 영국의 모던 스타일(Modern Style), 이탈리아의 스틸레 리베르티(Stile Liberty), 스페인의 모데르니스모(Modernismo).
05. 빅토르 오르타, 안토니 가우디, 라이몬도 다론코, 요제프 호프만, 찰스 레니 매킨토시 등 지역별로 다양한 변형이 존재하였으나, 아르누보 경향 전체는 기존 역사주의(historicism)에 견주어 가히 혁신적인 것.

[0011-2~0012-1] 브뤼셀과 파리
01. 벨기에의 빅토르 오르타가 에멜 타셀의 주택 설계한 1893년, 아르누보의 원년. 손잡이에서 바닥 장식에 이르기까지 "전체가 통일된 디자인" 통해  아르누보 구현.
02. 1896~1899년, 빅토르 오르타가 벨기에 사회당을 위해 설계한 <인민의 집>(Maison du Peuple), 기술 혁신과 새로운 스타일의 모범적 결합. 최상층 집회홀 무주공간으로 계획, 우아한 곡선의 철재 구조 장식.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1969년 무자비하게 철거됨.
03. 프랑스의 엑토르 귀마르가 디자인한 파리 지하철역 입구. 풍성하고 다양한 꽃문양 패턴의 주철(moulded iron) 부재.
04. 그러나 1900년에 이미 아르누보 자체의 한계가 로코코같은 과잉 경향 통해 드러남. ex)이탈리아 건축가 라이몬도 다론코의 파격적인 형태 언어.
05. 프랑스 아르누보의 나머지 주요 측면, 낭시파와 그 대표자 에밀 갈레의 유리공예 작품들. 꽃문양, 식물형태 등으로 장식된 고가의 유리세공 수집품에 유일하게 접근한 것은 미국인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Louis Comfort Tiffany).

[0012-2~5] 가우디와 스페인 모데르니스모
01. 아르누보의 스페인판인 모데르니스모 대표 작가 안토니 가우디.
02. 기능성 접어두고, 고딕, 무어 양식(Moorish), 그리고 자연에 대한 자신만의 독창적 관점을 합하여 매우 풍부한 형태언어 창조.
03. 성공적인 주거 건물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 여전히 공사중인 걸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0012-6~0013-3] 독일의 유겐트슈틸
01. 벨기에인 앙리 반 데 벨데의 작품은 유겐트슈틸이 예술공예운동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유행 이상임을 드러냄. 예술에 대한 새로운 비전 및 건축뿐 아니라 생활 모든 영역에서 전통, 관습 벗어날 것 주장.
02. 일상용품들은 예술적 형태를 띤 공예품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디자인 과정 거쳐야 함. 값비싼 제본술, 레터링, 가구에서 의상까지 총체 디자인.
03. 1901~1902년 사이, 독일에 체류하며 에센의 기업가 카를 에른스트 오스트하우스가 건립한 <폴크방 박물관>의 실내 장식 작업.
04. 친구이자 조언자 하리 그라프 케슬러(그의 일기는 현재까지도 세기 전환 문화사 주요 자료로 인정 받음)의 소개로 바이마르의 빌헬름 에른스트 대공 궁전 방문한 후, 1907~1914년까지 응용미술학교 기획 및 감독.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 후 그로피우스의 바우하우스의 전신.
05. 또 다른 바이마르의 귀족 에른스트 루트비히 대공, 자신의 궁전에 유겐트슈틸 증축 후원, 1899년엔 다름슈타트에 여러 예술가 초빙하여 예술가촌 조성. 1908년 빈에서 온 주요 작가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 갑작스럽게 사망할 때까지, 마틸덴회헤(Mathildenhohe)로 성장하여 독일 유겐트슈틸의 주요 건축 프로젝트 남김. 올브리히의 <결혼기념탑>(the Wedding Tower).
06. 마틸덴회헤는 페터 베렌스가 화가, 공예가로서 뛰어난 재질 보인 후 건축가로 성장한 곳. 베렌스는 이후 유럽 건축 역사에 지대한 영향.

[0013-4~0017-2] 곡선 대신에 큐브: 글라스고와 비엔나
01. 스코틀랜드 글라스고의 찰스 레니 매킨토시가 설계한 <글라스고 미술학교> 식물 형상 아닌 엄중한 기하학(Stereometric) 기초한 디자인. 동시대인들의 격렬한 비난.
02. 1900년 빈에 초대된 매킨토시의 규브형 가구들, 1903년 빈에 공방 설립하는 요제프 호프만에게 큰 영향. 이 공방은 1933년 폐쇄될 때까지 응용미술 생산의 중심. 한편 매킨토시의 작품은 올브리히가 다름슈타트 가기 직전 설계한 제체션 전시관에 전시됨.
03. 1897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조각가 막스 클링거,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 등 다양한 예술가들, 기성 빈 예술과 아카데미 전시회와 결별하며 빈 제체션(Vienna Secession 빈 분리파) 결성. 세기 전환기 오스트리아-헝거리 제국 수도 빈의 예술적 배경.
04. <빈 제체션관>은 도시의 일반적 건축형태 및 경관과 완전히 다른 것. 구성과 전시효과 높일 수 있도록 작품마다 알맞은 여백.
05. 빈 유겐트슈틸 건축의 엄정한 기하형태 언어(tectonic lnaguage)는 근대건축의 기능주의 발달 관련 주요 구실. 오토 바그너의 <빈 우편저금국> 대형 출납 홀, 엄격한 직선 그리드 배치, 유리블록 천장에서 홀 아래로 흘러내리는 빛.
06. 유사하게 절제된 형태, 요제프 호프만의 작품에서도 드러남. 브뤼셀의 <팔레 스토클레>, 상호 관입하는 규빅 블록과 파사드에 경제적으로 사용된 장식이 특징. 이러한 절제된 요소는 1차 대전 이후, 네덜란드 데 스테일, 독일 바우하우스에 이르러서야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의 전조. 이런 혁신에도 불구하고 <팔레 스토클레>는 분명 유겐트슈틸의 마지막 꽃.

[0017-3~7] 요소주의 건축
01. 네덜란드 건축가 헨드리크 페트뤼스 베를라허, 적절하고 필요한 모양 얻기 위해 형태를 줄이는 개념. 네덜란드 데 스테일 뿐만 아니라, 페터 베렌스,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같은 독일 건축가들에게 까지 영향.
02. <암스테르담 증권 거래소>, 재료를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구축적(tectonic) 요구에 바탕한 디자인 추구, 역사주의 형태 목록 폐기.
03. 우측 <암스테르담 증권 거래소> 사진, 플라스터벽은 '진실되지 못한 것', 19세기 절충주의 반대, 재료 물성에 충실한 단순성과 장인적인 작업 추구. "중요한 것은 실체를 위해 가짜 예술, 즉 거짓과 싸우는 것이다" 저서 <건축 양식 소고>의 기록. 
04. 아돌프 로스, 유겐트슈틸 외면, 장식은 범죄라 선언. 극도로 절제된 <슈타이너 주택> 및 <미하엘러플라츠 주상복합 건물> 디자인, 20세기 건축의 막을 내림.
05. 한편 19세기 미국 건축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소통 제외하곤 유럽에서 전개된 발전과 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