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l Polanyi 읽기/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독서노트]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005

architaek 2020. 2. 27. 19:12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제3장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노트

 

1. 다시 쓰는 마르크스주의

[0077-1] (1) 왜 그 ‘역사의 숙명적인 일’이 벌어지는가
01. 계급, 생산 과정과 맺는 관계에서 비슷한 지위를 차지하는 사람들의 집단. 생산 체제 변화 -> 혜택보는 집단의 변화.
02. 노동 계급, “실제로 그 역사의 숙명적인 일을 일으킨다고 예언된 이들은 바로 이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집단” 사회가 객관적, 역사적 상황이 허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추동.
03. 17, 18세기 부르주아 혁명은 나름대로 인류 보편 이익에 부합. 오늘날에는 ‘전체 사회’가 기계를 합리적으로 ‘계획’하고 ‘힘을 합쳐’ 사용하는 것이 생산을 증대시키는 길. 이러한 변화에 아무 잃을 것 없는 계급이 바로 노동 계급.
04. 노동 계급이 변화를 끌어내지 않는다면 사회 전체가 시들고 퇴락. “잃을 것은 사슬뿐이나, 구할 수 있는 것은 세계이다.”

[0078-1](2) 자기 이익과 지도력
01. 계급 전쟁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위와 같은 생산력의 발전 담보하며 이는 전체 사회의 이익으로 돌아오기 때문. 계급 이익이 근본 원동력되어 그 숙명적인 것이 현실화.
02. 마르크스는 결코 계급 전쟁, 계급 이익을 가장 근본적인 현실로 보지 않음. 마르크스 이론의 핵심은 계급 전쟁을 역사의 중심에 두게하는 이유들, 계급 이익이 현실에서 가장 근본적 원동력이 되는 이유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
03. 어떤 집단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그들 자신의 이해관계가 지닌 힘 X. 성공의 비밀은 그 집단이 얼마나 다른 집단들의 이익을(자신들의 이익에 포괄시킴으로써) 대표해내느냐가 관건.
04. 포괄을 이루기 위해선 지도하고자 하는 더 폭 넓은 집단의 이익에 자신의 이익을 가져가 맞출 수 있어야 함.
05. 노동 계급이 이를 포기할 때, 무관심한 대중은 치명적 파국에 출구가 없다고 느끼고 자본가들의 지도를 따름 -> 파시즘의 등장.

[0080-1] (3) 계급과 위기
01. 계급 전쟁은 가장 근본적인 현실 아님. 근본 현실은 ‘사회 전체의 이익’. 계급 이익은 객관적 현실에서 생산 수단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답을 찾고자 노력할 때 현실적 힘 발휘. 또 계급 이익은 객관적 상황에서 전체 사회 이익을 대표할 때만 비로소 사회 변화의 원동력.
02. 즉, 계급은 구체적 상황에서 사회 전체 이익 창출하거나 자신의 이익 변형시켜 다른 계급의 이익 포괄할 때 ‘지도력’을 발휘.
03. 계급 전쟁, 계급 이익은 전체 사회에 영향 끼치는 역사적 사건 발생할 때 종종 일어남. 핵심은 계급 전쟁과 계급 이익이 ‘왜’, 그리고 ‘어떻게’ 그 상황에서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

[0081-1] (4) 지도력의 대가
01. 현존 정치 체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막다른 상태. 둘은 각기 대립된 두 다른 계급의 투쟁 도구로 전락.
02. 사회 붕괴의 위험은 ‘반대되는 두 개의 이익’이 아니라 두 계급 간의 이러한 ‘교착 상태’에서 발생. 교착 상태를 피하기 위해 행동하고 나서는 여러 세력들의 힘이 지각변동에 가까운 사회 혼란의 근본 원인.
03. 계급 이익이라는 개념의 한계 너머 떠오르는 문제는 “지도력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04. 파시즘의 막다른 골목에 처한 인류에게 돌파구는 노동 계급이 지도력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은 자신들의 직접적 물질적 이익 아닌, 사회 전체를 지도한다는 목적 아래 노동 계급의 물질적 이익에 무관심한 대중의 이익에 자신들의 이익을 맞춰 나갈 때 입증.